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문단 편집) === 초기 ===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이 차지하기 전에 수백 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아[* [[식민지|식민지배]] 같은 개념이 아니라 그냥 핀란드가 스웨덴의 일부였다.] [[스웨덴계 핀란드인|스웨덴계 인구]]가 많이 남아있었고 그는 핀란드의 최고위 스웨덴계 귀족 중 하나인 [[만네르헤임가]]에서 태어났다. 만네르헤임의 증조부 칼 에리크 만네르헤임 백작은 핀란드가 막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겨졌을 때 여러 공직을 지냈다. 그는 원로원 경제부부장으로서 말하자면 오늘날의 핀란드의 총리의 전신에 해당하는 직책의 초대 역임자였다. 만네르헤임의 조부 칼 구스타프 만네르헤임 백작은 법관이며 또한 곤충학자였다. 부친 로베르트 만네르헤임 백작은 사업가였다. 구스타프 만네르헤임은 태어나면서 백작의 삼남으로서 [[남작]] 작위를 받았다. 1880년 부친의 사업이 파산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만네르헤임의 부친은 전재산을 처분한 뒤 [[정부(관계)|정부]]와 함께 [[파리(프랑스)|파리]]로 가서 [[보헤미안]]이 되었다. 모친은 남편의 외도에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고, 만네르헤임 7남매는 친척들에게 맡겨졌다. 구스타프 만네르헤임은 그 중 외삼촌이 후견인이 되었다. 재정 악화로 진로 문제가 심각해지자 외삼촌은 만네르헤임에게 군인의 길을 권했고, 만네르헤임은 [[하미나(핀란드)|프레드릭스함]]의 [[핀란드인]] 간부후보생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좁아터진 지역사회에 염증이 나서 반항 목적으로 무단외출을 했다가 퇴학당했다. 핀란드군에 들어갈 길은 막혀 버렸고, 결국 만네르헤임은 러시아로 건너가 [[러시아 제국군]] 장교로 임관받는다. 발트 3국 지역의 독일계 귀족들이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듯이([[카를 베베르]] 등), 젊은 날의 만네르헤임 역시 러시아 제국 황제를 섬긴다는 생각에 별 의문이 없었다. 이렇게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주군을 섬긴다는 중세적인 사고방식은 만네르헤임의 삶에서 여러 번 그 편린을 드러낸다. 만네르헤임은 니콜라이 기병학교에 입학해 1887년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맹세를 했다. 1889년 우수한 성적(전교 10등)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기병소위로 임관해 독일 국경지대의 제15용기병연대에 배속되면서 군인 생활을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